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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르사주_황후 엘리자벳 실화 다시 보기

     

    영화 코르사주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실화 이야기를, 그녀의 40대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입니다.

     

    주로 40대인 1878년의 이야기, 즉 아름다움에 집착한 황후의 외모 절정기를 벗어난 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는 있지만, 황후의 전기적 영화는 아니며, 인물과 상황을 재해석했다고 보면 됩니다.

     

    영화 코르사주(Corsage)는 왓챠, 웨이브, 쿠팡플레이, 티빙  OTT에서 다시 보기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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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르사주 (Corsage) 정보

     

    • 원제 : Corsage
    • 개봉일 : 한국 - 2022년 12월 21일 
    • 감독 : 마리 크로이처
    • 출연 :

    • 시간 : 114분
    • 제작 :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스
    • 수상내역 : 2022
      1. 35회 유럽영화상(유러피안 여우주연상)
      2. 58회 시카고국제영화제(실버휴고 퍼포먼스상)
      3. 66회 런던 국제 영화제(작품상)
      4. 70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TVE-어나더 룩 상 - 특별언급)
      5. 75회 칸영화제(배우상(주목할만한 시선))

    코르사주 (Corsage) 뜻, 의미

     

    제목으로 사용한 단어 "코르사주 Corsage"는 극 중에서 등장하는 코르셋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몸매 자체를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하는 단어였다고도 합니다.

     

    19세기 왕실에 실존하던 황후 엘리자베트는 당대의 코르사주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요, 

     

    40대에 들어서 달라지는 그녀의 몸매에 대한 우울한 생각과 외부의 평가는 그녀를 답답하게 만들고 떠나고 싶게 합니다.

     

    이 영화는 황후 엘리자베트로부터, 시대의 억압을 견디기 힘들었던 여성의 삶을 돌아보도록 이끕니다.

     

    줄거리 / 속박 프레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황후 엘리자베트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황후  엘리자베트.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1킬로의 머리를 이고 우아하게 앉아있는 것뿐입니다.

     

    매일 몸무게를 측정해야 하는 갑갑한 황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엘리자베트는 자유를 찾아 자신을 조이던 코르사주를 벗고 스스로의 초상을 완성하려 합니다.

     

    하이킹과 여행, 승마를 좋아했고 활동사진의 최초의 모델이기도 했던 그녀.

     

    틀에 박힌 생활을 견디다 못해 우울증을 앓던 그녀는 여러 번 자살을 상상하는데 영화의 끝장면에서는 그녀가 바다로 뛰어내립니다.(실제로는 60살까지 살았고 스위스에서 암살 당했다고 합니다.)

     

    40세 이후 급격히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해서 대외적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초상화도 그리지 못하게 했다고 하네요.

     

    오스트리아가 가장 사랑하는 황후 엘리자베트, 시씨(Sisi)

     

    실존인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그녀는 "시씨:라는 애칭으로 아직까지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여행시 정말 어딜 가나 엘리자베스 황후의 기념품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는 결혼 후 조피(헝가리 여행 중 요절), 기젤라, 루돌프, 마리 발레리 등 4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유일한 아들 루돌프가 성인이 된 후 '마이어링 사건'으로 알려진 밀월여행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그녀는 실의에 빠져 검은 상복을 입고 도피성 짙은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연달아 겪는 비극에 건강도 안 좋은 상태였는데 잦은 여행으로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암살 전날 마지막으로 사진에 잡힌 시씨(오른쪽은 시녀)와 암살범.

    황후 엘리자베트의 암살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미친 영향

     

    여러가지 요소를 떠나 엘리자베트의 암살은 당시 유럽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 즉 '시씨'는 189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암살당했습니다. 당시 유럽은 여러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 유럽의 주요 강대국들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고,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세르비아 간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가 더욱 부각되는 시기
      • 산업혁명 이후 사회 구조가 급변하고 있었고, 노동운동과 여성의 권리 신장 등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부각되고 있었습니다.
      • 여러 국가에서 왕정의 권위가 도전받고 있었고, 이에 따라 많은 정치적 암살 사건들이 발생했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암살도 이러한 맥락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발생한 이 사건은 유럽에 몇 가지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요,

    1. 정치적 불안정: 황후의 암살은 제국 내에서 정치적 불안정을 가중시켰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녀의 죽음을 제국의 쇠퇴와 연결지어 보았고, 이는 내부의 불만과 긴장을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2. 국가 통합의 어려움: 엘리자베트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은 제국 내 민족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국가 통합에 어려움을 초래했습니다.
    3. 사회적 반응: 암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이는 제국의 귀족과 평민 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4. 외교적 긴장: 암살 사건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관련된 외교적 긴장도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세르비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이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이어지는 복잡한 상황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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